레드 컴플렉스를 넘지 않고서는, 평화를 말할 수 없다

최근 일본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협상 카드로 ‘하나의 전구(Theater of Operations)’ 구상을 제안했다. 이 구상은 동중국해, 남중국해, 대만해협, 한반도 등을 하나의 군사작전구역으로 통합하여, 미일 군사협력이 전략적 전선으로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미국이 바라는바이며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의 통합 지휘, 일본 내 전투사령부 강화 등의 실행을 원하고 있다.

문제는 이 새로운 전구 구상이 한국을 미중 패권 경쟁의 최전선에 위치시킨다는 점이다. 한미일의 ‘전략적 연계’가 강화될수록 한국은 중국 견제의 군사적 전초기지가 되고, 이는 북한과의 갈등은 물론 동북아 전체의 안보 불안을 심화시킨다.

‘전구(戰區)’라는 군사 용어는 전쟁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지리적 단위를 뜻한다. ‘하나의 전구’ 구상이란 곧 한반도와 인접 지역 전체를 전쟁의 무대로 설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을 또 다른 냉전의 전략 공간으로 내줄 수 없다.

한국은 전선이 되어서는 안 되며, 평화를 위한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정당은 오랜 시간 동안 ‘레드 컴플렉스’라는 이데올로기적 족쇄에 갇혀 왔다.

레드 콤플렉스란, ‘북한과의 대화’, ‘군비 축소’, ‘미군 철수’, ‘평화체제’와 같은 말을 입에 담기만 해도 종북, 안보무능,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히는 정치적 공포증이다.

그 결과, 진보정당은 평화를 말하면서도 실제 외교안보 대안 제시에는 소극적이었고, 국민 안전과 안보 주권에 대한 공론장 형성에도 실패해 왔다.

이제 이 금기를 넘어야 한다. 평화를 말하는 것이 곧 안보에 무책임한 것이 아님을 당당히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국방'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생명과 자존을 미일 전략의 부속품으로 내맡길 수 없다.

이제 진보정당은 더 이상 ‘레드 컴플렉스를 두려워하는 목소리’가 아닌, ‘시민의 생명과 평화를 말하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진정한 안보는 군사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이 위협받지 않는 외교 환경을 만드는 것에서 온다.

지금 필요한 건 ‘따라가는 군사협력’이 아니라 ‘주도하는 평화’다. 정의당은 평화의 언어를 당당히 말하는 진보정당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