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푸틴 회담, 한일정상회담, 한미정상회담으로 보는 국제 질서의 전환

글 : 주세훈

지난 수십 년간 자유주의와 다자주의에 기반했던 국제 질서는 중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기 행정부 출범은 기존 질서의 악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단일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미국 중심의 자국 우선주의 외교가 전면에 부상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통적인 글로벌 리더십의 역할을 거부하고 있다. 동맹국을 공동의 가치 파트너가 아닌 경제적, 지정학적 이익에 따라 재정의해야 하는 거래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미국 우선주의’ 기조는 국제사회 전반에 걸쳐 예측 불가능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트럼프의 ‘거래 외교’와 푸틴의 기회

알래스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 없이 끝났다. 이 회담은 몇 달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받은 냉랭한 환영과 푸틴에 대한 따뜻한 영접과 대조를 이루며 러시아의 중요한 외교적 승리로 끝났다. 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전쟁에 대한 미국의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는 점이다. 회담 이전에 유럽의 동맹국들과 우크라이나는 휴전을 추진해 왔지만 트럼프는 휴전 요구를 철회하고 장기적인 평화 협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푸틴의 입장과 발을 맞췄다. 미국의 변화는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국가들에게 돈 바스 지역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한다. 이 변화는 동맹국의 이익이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개인적 목표보다 후순위라는 신호를 보낸다. 미국의 목표는 더 이상 상호주의에 기반한 항구적인 평화를 달성하는 것에 있지 않다. 정치적으로 성공으로 포장될 수 있는 ‘거래’를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다. 새로운 미국의 목표는 전통적인 외교 채널과 동맹국과의 협의를 우회했다. 이제 동맹국들은 미국의 약속에 대한 신뢰에 의문을 품게 됐다.


한일정삼회담: 역사문제를 유보한 실용적 외교

이재명 한국 대통령과 시게루 이시바 일본 총리는 17년 만에 공식적인 ‘셔틀 외교’를 재개하며 양국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번 정상회담은 의례적인 행사가 아니다. 미국 주도의 글로벌 무역 질서 재편과 미중 갈들으로 인한 지정학적 불안정성 증가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자리였다. 정상회담의 결과로 양국은 “미래지향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약속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공동 성명은 강제동원 및 위안부와 같은 역사적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과거를 다루는 방법에 대한 피상적인 논의에 그쳤다. 그 이유로는 역사 문제 해결보다 미래 협력을 우선시한다는 변화된 한국 국민들의 인식이 반영됐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서 역사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없이는 우호적인 관계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국민들과 시민들의 강력한 비판 또한 받고 있다. 외부 위협에 직면한 정상회담의 전략적 고민은 가능하지만 역사정의를 외면한 협력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한미정상회담: 거래적 동맹의 시작

이재명 한국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거래에 기반한 새로운 동맹 모델을 확인했다. 취임 두 달 만에 열린 이번 회담에서 한국은 구체적인 요구와 양보에 직면했다. 가장 중요한 논의 주제는 방위비 분담금 문제였다. 트럼프는 한국이 미국의 군사력에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한국이 국방비를 GDP의 5%까지 늘릴 것을 요구했다. 다음으로 미국은 주한미군의 역할을 북한 억제에서 대만 해협 긴장 관리와 중국 억제라는 더 넓은 지역 역할로 확대하려 했다. 이는 한국에게 지정학적으로 큰 난제다. 중국의 반발과 미군 감축으로 인한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방어태세 약화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런 안보 요구에 대한 대가로 반도체, 배터리, 조선업 등 핵심 분야에 대한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펀드를 포함한 대규모 기업 투자 패키지인 마스가(MASGA) 패키지를 미국에 약속했다. 이제 한미동맹은 더 이상 추상적인 가치 대신 구체적인 재화와 서비스의 교환에 기반한다. 미국의 오산 공군기지 소유권 요구와 같은 이례적인 요청은 동맹의 거래적 성격을 더욱 부각시킨다.

2025년 한미 정상회담 주요 쟁점


미국의 압박 요인

대응 방식 및 전략

유럽

방위비 미납, NATO 약화, 우크라이나 지원 축소

전략적 자율성 모색, 영국-프랑스-독일 3각 안보 협력 강화, 독자적 방위 산업 투자

일본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미-일 안보 조약 불공정 지적

대미 투자 및 기술 협력 강화, 안보 역할 확대, 우크라이나 복구 지원 등 외교적 노력

한국

방위비 분담금 증액, 전략적 유연성 요구

대미 투자(마스가) 등 경제적 인센티브 제공, 국익 중심 실용 외교 표방, 주한미군 역할 대북 방어로 한정 주장





한국의 동맹 정책을 위한 선택지

트럼프의 ‘거래 외교’는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포함한 국제 질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트럼프와 푸틴의 정상회담, 한일정상회담 그리고 한미정상회담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이 새로운 외교 모델은 동맹국과의 신뢰와 상호주의 대신 오직 정치적 성공을 위한 ‘거래’만을 추구한다. 이런 현실은 한국의 외교 정책이 더 이상 현상 유지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 명확히 정하는 근본적인 재조정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트럼프와 푸틴의 정상회담이 보여주듯 ‘거래 외교’는 동맹국의 이익을 외면하고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우선시하는 냉혹한 현실을 드러냈다. 한국은 이런 상황에서 외교와 안보를 통해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평화, 자주, 정의와 연대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우리의 외교 노선을 재정비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한국은 특정 강대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연합이나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을 확대해서 외교적 선택지를 넓히고 동아시아 평화 체제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는 미국의 군사적 요구에 대응하는 것보다 근본적인 안보 해법이 될 수 있으며 군비 증강 경쟁을 완화하고 국방 예산을 한국 사회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것이다.

다음으로 한일정상회담에서 드러난 ‘역사 문제 유보’라는 접근법은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지는 몰라도 장기적인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 역사 문제는 단순히 과거를 되새기는 일이 아니라 인권과 정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행위이며 미래 세대에게 올바른 역사를 교육하는 책임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이 필수 전제가 돼야 하고 정부 주도의 외교를 넘어 양국 시민 사회의 연대를 통한 민간 차원의 화해를 포함돼야 한다.

가장 시급하게 재조정돼야 할 것은 한미동맹이다. 트럼프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와 주한미군의 역할을 대만 해협까지 확대하려는 압박은 한국의 안보 주권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다. 직접적인 국방비 예산 증가보다는 사회적 인프라를 확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회해서 국방비 증액의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한, 한국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서 한반도의 평화를 수립하고 남북의 대립이 한반도 외의 분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한다는 명확한 우리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 불필요한 지정학적 갈등에 휘말리지 않고 미중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함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외교는 이제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수동적인 선택을 강요 받는 구조를 벗어나야 한다. 거래대신 평화와 정의, 연대를 추구하는 외교 모델은 한국을 단순히 동맹의 일원이 아닌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주도하는 능동적인 행위자로 자리하게 할 것이다. 이는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적 정의를 유보하지 않고 동맹이라는 명분으로 주권을 훼손하지 않으며 군사적 긴장 대신 대화와 연대를 통한 항구적인 평화를 추구하는 길이다. 이러한 평화, 자주, 정의, 연대의 가치가 한국 외교의 나침반이 된다면 다가오는 복잡한 지정학적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