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학습한 민주주의를 정당에서 구현한 포데모스

Thousands of people participate in the “March of Change,” organized by Podemos, a leftist political party supportive of lifting sanctions on Russia, in Madrid, Spain, January 31, 2015. Photo credit: Barcex.

2011년 5월 15일, 스페인 정부의 긴축 정책과 부패한 특권 정치에 분노한 시민들이 마드리드 솔 광장을 점거했다. 복지축소, 노동유연화, 높은 실업률 등 신자유주의의 직격타를 입은 청년들이 대다수였다. 당시 스페인의 청년실업률은 50%에 육박했고 은행의 주택압류로 무주택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었다.

3만 명의 시민들은 광장에 텐트를 치고 농성을 벌이며 분노한 사람들(인디그나도스)을 조직했다. 5월(May) 15일을 일컫는 15M운동은 곧바로 스페인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유럽 곳곳과 뉴욕의 오큐파이 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은행 및 유럽연합 자본에 저항하고, 낡고 부패한 기득권 정치에 반기를 들며 새로운 저항주체가 되었다.

분노한 사람들은 아호라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앤 코뮤 같은 시민 참여형 정치조직(지역정당)으로 확장되었고, 2014년에는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뜻의 정당 포데모스를 창당한다. 포데모스는 기존의 좌-우가 아닌 카스트로 호명한 기득권과 시민들, 위-아래 프레임을 통해 지지를 얻고 스페인 사회 반향을 일으켰다. 창당한 해 유럽의회 선거에서 5석을 얻더니 다음해 스페인 총선에서는 21%로 69석을 얻으며 제3정당으로 급부상했다.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시장까지 배출해내며 단시간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냈다.

포데모스 성공의 핵심, 민주주의

포데모스 성공의 핵심은 40만 명의 당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토론하여 결정하는 민주주의에 있었다.

15M운동 과정에서 자유롭고 민주적인 소통방식과 의사결정이 필요했던 광장의 시민들은 끊임없이 토론하고 참여하는 가운데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제도화 시켰다. 이들은 300개 이상의 지역 총회를 통해 정책을 제안하고 토론하며 포데모스라는 정당의 형태로 발전시켰고, 직접 민주주의라는 정신을 정당의 운영 전반에 반영시킨 것이다. 포데모스는 한 축에서는 지역조직인 써클을 통해 써클은 당원과 시민사회가 수 백명씩 모여 토론했고, 한 축에서는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누구나 제안하고 토론할 수 있는 디지털 민주주의를 구현해 냈다.



사진출처: 정의당

항쟁은 변화를 만든다.

역사적으로 시민항쟁은 세 가지의 변화를 만들어 냈다. 첫 번째는 항쟁에 참여하며 의식적으로 성장하고 각성한 시민들의 변화, 두 번째는 항쟁에서 분출된 요구를 반영한 제도의 변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항쟁의 이후를 만들어갈 정치조직의 출현이다.

12.3 계엄으로 시작된 윤석열 탄핵 투쟁 4개월을 통해 광장에 나온 시민들은 저마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자신을 둘러싼 혐오와 폭력에 저항하며, 평등과 연대의 의식을 키워나갔다. 각종 투쟁에 연대하는 말벌시민들이 되며 시민의 변화를 증명해내고 있다.

제도의 변화는 윤석열 퇴진을 넘어 사회대개혁을 요구하는 세력들이 대선과 개헌운동을 통해서 얼만큼 만들어 낼지의 몫으로 아직 남겨져 있다.

마지막으로 항쟁 이후 변화된 시민과 제도에 맞는 새로운 정치조직은 아직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정의당은 혁신을 통해 항쟁이후 새로운 요구를 받아안는 정치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항쟁은 새로운 정치조직을 탄생시키기도 하지만, 기존 정치조직을 변화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

스페인 시민들처럼 우리도 지난 4개월 동안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훈련하고 체화했다. 부정한 권력을 끌어내리며 헌법과 정치제도, 민주주의를 공부 하고, 투쟁현장에서 다양한 의견을 모아내고 평등수칙을 만들며 시민들만의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시민들이 학습한 민주주의가 정치에 적용되지는 못하고 있다. 변화된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는 87년 헌법, 시민을 대의하지 않는 국회, 그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법과 제도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

포데모스가 시민들과 함께 광장에서 학습된 민주주의를 구현하며 만들어진 정치조직이라면, 정의당은 기존의 관습과 문법을 버리고 시민들의 직접적인 참여와 토론의 공간이자 그것을 정치에 반영시키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정의당 내의 조직체계, 의사결정 구조, 운영 시스템 등 전반의 혁신이 필요하다.

플라자 포데모스 캡쳐화면 사진 출처: 레디앙

정의당의 혁신, 무엇으로 시작할 것인가?

당원과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활발한 토론을 기반으로 당의 정책과 메시지가 결정되고, 이것을 수행하는 지도부와 공직자를 배출해야 한다. 현재의 지역위원회를 넘어 가 한계가 있다면 부문, 의제별 당원모임, 당원 소모임 등을 활성화하고 이곳에서 논의된 내용은 반드시 당 전반에 공유되도록 해야 한다. 지역에서도 당원 뿐만 아니라 지역의 시민사회, 노동조합과 일상적인 형태의 모임을 구성하고 이곳에서부터 제안하고 토론하여 만든 내용을 모아내고 제안해하고 정의당의 정책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현재 정치 체제가 시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하지만 정의당에서부터 시작해볼 수 있다.

온라인을 활용해 당원과 시민들이 상호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광장의 시민들은 일상에서 온라인을 통해 소통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에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남태령이나 한남동에서의 연대를 만들고, 광장에서의 변화를 추동한 것도 SNS를 통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주장과 의견개진이었다. 현대 정당 중에서 디지털민주주의를 구현한 여러 사례를 찾고 작은 것부터 도입해서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맞는 플랫폼을 찾고 이를 활용해 당원과, 시민들이 쉽게 접근하고 제안하고 토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보자.

안타깝지만 지금의 포데모스는 실패했다. 2016년 이후 각종 선거에서 참패하고 있고 리더 이글레시아스를 둘러싼 문제와 당의 분열 등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점점 약화됐다. 최근 포데모스의 선거연합정당이었던 우니다스 포데모스는 공산당의 디아즈 노동장관이 주도한 좌파연합 수마르로 재편되면서 사실상 포데모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중이다.

그러나 시민항쟁 이후에 포데모스가 만들어지고 시민들과 당원들의 참여로 성장해간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8년전, 2016년 촛불항쟁 이후 많은 정치조직, 사회운동단체들이 포데모스를 공부하고 배워왔지만 적용하지는 못했다.또다시 2016년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사회대개혁을 말하고 있다. 사회대개혁을 만드는 힘은 시민에게 있다. 항쟁에서 만들어진 시민들의 에너지를 보존하고 사회대개혁을 위한 동력을 만들기 위해 정의당의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새로운 시도는 어렵고 실패의 위험도 있지만 변화를 창조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항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