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프랑스 좌파블록


글 : 홍의석


분노한 프랑스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현 대통령 엠마뉘엘 마크롱의 퇴진을 외치고 있다. 노동조합이 동참한 총파업으로 이어지며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가 계속되는 이유는 현 정부의 긴축정책 때문이다. 마크롱 정부의 주장은 재정적자가 누적되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으로 긴축재정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다.

< Eurostat (2025년6월17일) / 갈무리 >

재정적자는 프랑스만의 문제는 아니다. EU에 가입된 주요국 모두 재정불안을 격고 있다. 유럽의 주요국들이 직면한 문제는 러/우전쟁에 따른 국방비 지출 확대, 금리상승에 따른 이자비용 증가, 고령화에 따른 공공의료비 증가이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인 2020년을 기점으로 재정적자가 큰 폭으로 증가한다는 점이다. 상시적인 거리두기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기간에 정부의 확대재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물론 이 당연한 것에서 대한민국이 비껴간 것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마크롱은 복지제도에 따른 공공비용 증가가 재정적자의 가장 큰 원인이라 주장하지만 유럽의 주요국가가 가지는 공통된 문제를 외면하고 재정문제를 노동자와 서민에게 전가하는 주장이다. 재정적자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돈을 많이 가진 부자와 기업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부과하는 것이다. 이런 간단한 방법을 외면하는 정치가 쉽게 풀어낼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사회당 올랑드 정부에서 요직을 역임하며 성장한 엠마뉘엘 마크롱은 사회당의 보수정책을 기획하며 주목을 받았다. 부자에게 높은 세율을 부과하는 공약은 무산시키고 기업들과 감세협약을 하며 친기업 정책을 이끌던 마크롱은 2016년 새로운 정당을 창당한다. 정치적 갈등과 혼란에 지친 프랑스 유권자들에게 좌파도 우파도 아니라는 마크롱과 그가 창당한 앙 마르슈(En Marche)가 갈등을 봉합할 적임자로 보였던 것인지 높은 득표율로 극우 후보 마린 르펜을 꺾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프랑스는 결선투표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결국 사회당과 공화당으로 양당후보가 당선되는 대선판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양극 체제에서 새로운 정당으로 뛰어든 마크롱이 당선되는 것은 이례적인 결과였다.

< AJplus X / 갈무리 >

하지만, 마크롱 정권은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다. 유류세 인상으로 촉발된 노란조끼운동은 프랑스를 넘어 그 해 유럽 전역을 흔들었다. 판데믹 시기 코로나19에 대해 잘 대처했다는 평가로 지지율이 잠시 상승했지만 또 다시 이어지는 자유주의 정책들은 프랑스 유권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발췌 >

2024년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정당의 약진으로 극우세력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다. 마크롱은 유럽의회 선거 직후 극우세력의 부상을 이유로 의회를 해산하였지만, 근본 원인은 계속된 지지율 하락과 2022년 총선에서 여당이 주도했던 연합정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조기총선으로 과반의석을 확보하여 안정적인 정권운영을 기대하였지만 결과는 범좌파연합인 인민전선(Nouveau Front Populaire)이 180석으로 1당이 되었고, 마크롱의 앙상블(Ensemble pour la République)은 159석, 극우 국민연합 (Rassemblement National)이 142석을 차지하며 어느 정당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마크롱 정권의 초대 총리는 불신임으로 낙마하였고 다시 임명된 총리도 최근 긴축재정에 대한 프랑스 시민들의 반발로 사퇴하였다.
< 해리스인터랙티브 발췌 >

극우세력의 강력한 도전과 여당이 주도하는 조기총선에서 범좌파 세력이 제1당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연합하여 하나의 세력으로 뭉친 것이다.

극우정당인 국민연합이 유럽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하며 급부상하자 반극우를 기치로 좌파연합이 결성된다. 선거운동의 유불리가 아닌 극우의 부상과 마크롱 정권이 걷고 있는 자유주의 노선을 멈추기 위해 일부 다른 목표와 지향점을 뒤로하고 프랑스 시민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협하였다. 범좌파블록이 결성된 것이다.

조기총선에서 국민연합(RN)이 가장 높은 득표를 받으며 우려가 현실이 되는가 싶었지만 프랑스 유권자들은 결선투표에서 극우를 견제하는 투표를 하였고, 사회당도 결선투표에서는 극우를 저지하는 투표를 했다. 결과, 극우는 1차 투표의 득표율에 비해 적은 의석을 확보하게 되었다.

범좌파블록과 프랑스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이 극우세력을 저지하였지만 현재 프랑스는 좌파블록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사회당은 여전히 긴축정책을 지지하며 마크롱 정부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고 불복하는프랑스(LFI) 멜랑숑 대표는 마크롱의 탄핵을 주장한다.마크롱은 2027년 임기 만료전에는 사임하지 않겠다는 뜻을 확실히 하고 있다. 녹색당은 마크롱에게 1당을 획득한 좌파에서 총리를 임명하라고 재촉했지만 마크롱은 의회분열을 막지 못해 사임했던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전 총리를 총리로 재지명하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총리지명과 마크롱 탄핵을 둘러싸고 범좌파블록은 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

범좌파블록을 형성했던 이유를 다시 돌아봐야 한다. 극우세력의 부상을 막고 마크롱 정부의 긴축재정을 위시로 하는 자유주의 정책이 시민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이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연합이었다.

여전히 프랑스 시민들은 긴축재정에 반대해 싸우고 있고, 마리 르펜의 극우정당은 사회적 약자들을 공격하며 세력을 확장해가고 있다. 다음 선거에서 유불리만을 따지지 않고, 시민들 곁에서 극우의 부상을 막았던 정치세력연합으로서 범좌파블록은 자기 역할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