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아메리카의 반트럼프 전선


글: 홍의석



출처: Geocurrents 도표갈무리


 

밀레니엄을 앞둔 라틴 아메리카에서 부패와 불평등에 지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무역 질서를 미국 중심으로 변화시키며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자유무역 체계를 구축하였다. 미국과 인접한 라틴 아메리카는 일찍부터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자유무역’이란 명목으로 미국의 무역 질서에 편입되었다. 미국의 민간투자와 함께 원자재를 제공 받지만, 경제 전반이 미국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자본이 마음껏 착취하는 구조는 부패와 불평등을 가져왔고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정권이 흔들리게 된다.

칠레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한 시민을 탄압하고 학살했던 피노체트가 민중에 의해 축출되었다. 멕시코에서는 사파티스타가 멕시코 정부에 선전포고하며 봉기하였다. 1998년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를 시작으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좌파 정당들이 정권을 잡기 시작한다. 좌파 정부들은 사회지출을 늘리고 복지정책 적용 범위를 확대하였다. 노동 시장을 개선하여 실업률을 낮추고 실질임금을 상승시킨 라틴 아메리카 좌파 정부들은 공통으로 소득 불평등을 감소시키거나 최소한 멈추게 했다.

냉전이 종식되고 미국의 일극 체제는 현재 중국의 성장과 함께 미국을 견제하려는 국가들의 다극 체제로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중국의 도전으로 위협을 느낀 미국은 인접한 지역에 좌파 정부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좌파 정부를 흔들고 있다. 트럼프 재집권으로 더 강력해진 미국 우선주의는 라틴 아메리카 좌파 정부에게 관세를 이용해 압박하며 미국의 요구를 관철하고 있다.

핑크 타이드로 대표되는 라틴 아메리카 좌파 정부들은 미국의 압박에 잘 대처하는 듯 보였지만 최근 보수정당에 정권을 넘겨주는 국가들이 나타나고 있다. 과도한 인플레이션으로 지친 국민들이 좌파 정부에게 등 돌린 것으로 보이지만 그 뒤에는 미국과 미국에 결탁한 자본이 있다.

칠레에는 세계최대의 구리광산이 있다. 미국 자본들은 구리광산에 많은 투자를 하였고 칠레 경제에서 구리수출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전체 수출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율이 90%에 육박한다. 볼리비아와 에콰도르 역시 석유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다. 산업이 편중되다 보니 세계적인 경기침체에 더 민감하게 영향받게 된 것이다.

출처: deloitte 도표갈무리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산업구조가 편중된 부분이 좌파 정부의 보폭을 움츠러들게 만들고 있지만 산업구조 다변화 시도는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무역 부분에서는 미국과의 교역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과거에 비해 그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다. 중국이란 큰 시장이 열리면서 다변화되었고, 그에 따라 미국의 경제제재가 힘을 잃는 듯 보였지만, 중국의 경제가 둔화하며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다.

 

출처: GS칼텍스 미디어허브 & Latinomerics_sources 갈무리

베네수엘라는 라틴 아메리카 최대 석유 생산국이었다. 사우디를 능가하는 매장량으로 막대한 석유를 생산하던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은 쇠퇴를 거듭하다 현재는 라틴 아메리카 내에서도 생산량이 3위로 떨어지며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석유산업이 쇠퇴한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미국의 개입이다. 미국과 가까운 곳에 좌파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경제제재를 하였고 그 결과 생산 시설을 정비하거나 생산한 석유의 판로를 찾지 못했던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Petroleos de Venezuela, S.A)는 유가가 한창 치솟던 기간에도 석유 생산량이 감소하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며 세계적으로 에너지 수급이 흔들리자, 미국은 베네수엘라와 재협상을 하지만 결국 정치적인 문제로 협상은 파기되었다. 좌파 정부 재집권이 부정선거였다는 주장을 협상장으로 끌고 들어온 미국은 약속했던 베네수엘라 석유 판매 허가를 뒤집었다.

멕시코의 국영 석유회사 페멕스(Pemex:Petroleos Mexicanos)는 그동안 쌓인 적자만 수십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경영 문제에 허덕이고 있다. 페멕스의 적자는 지형에 따른 시추 비용 증가와 국제유가 하락을 원인으로 지목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영 석유회사를 비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것에 있다. 멕시코는 산유국임에도 정유 수입량이 많다. 비교적 싼 원유를 수출하고 비싼 정유를 수입하는 구조다. 전기 생산의 대부분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가스에 의존하는 것을 보면 더 명확히 드러난다. 그 이면에 국영기업을 흔들어 다시 민영화하려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다.

국영 석유기업이라 현 셰인바움 대통령이 페멕스 경영을 책임지게 되는데 경영 정상화를 위해 미국 투자회사인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은행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국영 석유회사이지만 미국의 투자를 받게 된다면 그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이다.

2019년 칠레에서 지하철 요금 인상에 대한 시민들의 항의 시위가 대규모 반정부 집회로 발전한다. 시작은 지하철 요금이었지만 소득 양극화로 분노가 쌓였던 시민들이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대규모 집회를 이어간다. 시민들의 분노는 정권이 하려던 요금 인상과 긴축정책을 무력화시켰지만, 그 와중에 시민과 공권력 양측에게 많은 희생자를 만들었다. 좌파 정부는 제도 개혁에도 앞장섰는데 피노체트가 집권했던 시기에 제정된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 개헌 운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2022년, 2023년 두 번 모두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며 실패하였다.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들어오는 마약을 막겠다며 군대까지 동원하여 무력을 행사하며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갱단의 뿌리는 마약 최대 소비국인 미국이며 판매 대금마저 고스란히 미국으로 넘어가고 있음에도 미국 정부는 마약 범죄를 빌미로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을 압박하고 있다. 갱단이 사용하는 무기마저 미국산으로 당연히 미국이 문제의 근본 원인인 것이다. 미국은 트럼프가 집권하기 전에도 세계의 깡패 국가였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제관례나 질서는 무시되었다. 그나마 트럼프 전에 미국은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며 동맹을 챙기려는 모습이라도 보였다면 트럼프는 안하무인으로 노골적인 미국 우선주의를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관세 전쟁은 라틴 아메리카의 경제를 흔들고 있다. 중국이 성장했던 시기 라틴 아메리카 좌파 정권들은 그 영향에 힘입어 좌파 정부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중국의 성장이 둔화한 지금, 미국의 압박이 더해지며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은 위기를 맞고 있다.

 

출처: 동아일보 갈무리

좌파 정부는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시작했지만,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졌다. 대부분의 좌파 정부가 자본과 합의로 경제정책을 이어가며 근본적인 구조개선을 하지 못한 것이 결국 시민들을 실망하게 했고,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서민들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실망한 시민들은 좌파 정부에게 등을 돌리고 있으며 그들의 표심은 안타깝게도 보수정당으로 향하고 있다. 세금 제도를 개혁하지 못한 채 복지지출을 늘렸던 좌파 정부들은 재정 부담을 떠안게 되지만 이것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미국의 자본을 투입하여 해결한 문제들이 지금의 라틴 아메리카 정치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있다. 멕시코의 셰인바움이 이 기조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핑크 타이드가 건재했던 시기는 미국과의 관계가 공고했던 시기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국가들과 교류하며 다변화를 모색했던 시기였다. 세계적인 불황으로 모두가 어려움에 처한 지금, 미국의 영향력에 기대어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면 라틴 아메리카는 다시 미국에 의해 휘둘리는 지역이 될 것이다.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반트럼프 전선을 펼치며 강력한 저항을 펼쳐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