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이 만난 사람 <이상미 당원>

또다른플랜에는 정말 멋진 당원들이 많습니다. 또다른플랜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 소개할 사람은 이상미 당원입니다.


계엄정국에서 광장에 모인 당원들이 노란 정의당 조끼를 입고 노란 집게핀으로 머리를 올린 이상미 당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갈 때마다, 가는 곳마다 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20대 대선전까지 저야말로 표대신 후원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아는 심상정이란 정치인이 의정활동을 펼친 기반이 된 당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사회적, 개인적인 빚 갚는다는 심정으로 입당했습니다.“

입당을 하고 처음에는 당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에서 어떤 행사와 집회가 있는지 연락을 받은적이 없기 때문이었는데요. 알고보니 입당시 전화와 문자를 거부해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전화와 문자 거부 하셨다면 꼭 해제해 주셔야 당이 여러 소식을 보내드릴 수 있답니다.)


이상미 당원을 못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본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투쟁하는 곳 어디에나 이상미 당원이 있었다는 의미인데요. 이렇게 자주 투쟁현장에 나올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물어보았습니다.

“예전 부터 (검찰총장) 윤석열이 싫었어요.페미니스트와 윤석열은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참 칼부림과 테러가 심하던 시기에 여성이라서 윤석열 정권에서 이미 한 번 죽을 뻔 했는데 계엄으로 한 번 더 죽을 뻔 했다고 생각하니 안 나갈 수가 없었어요. 집회 나가면 같이 연대하는 집단에서 시위를 한다니 저쪽 시위도 가봐야 도의에 맞지라고 생각해서 나가다보니 집회에 나가는 횟수와 범주가 늘어났어요.”

윤석열 정부 초기 성남을 비롯한 칼부림 사건이 거리에서 일어났었는데 이상미 당원의 출근길이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동선이 달라서 살았다. 정말 여성이라고 죽을 수 있구나를 느낀 순간이었고 이상미 당원은 그후 여성집회에 안 나갈 수가 없었대요.


마침 여건적으로도 가능해졌다고 합니다. “금전적 문제가 해결 된 상태였고 가정 단위에서 감당할 몫이 적었습니다. 당시에 재직 중이던 회사의 일정 조율이 자유로왔던 편이었고 광장을 열었던 집단과 개개인이 감당할 것이 적고 부담이 덜 가는 환경을 조성해주신 덕이죠.”

당활동과 투쟁에 진심인 이상미 당원에게 또다른플랜 정치학교를 듣게 된(지난 4월에 열린 1차 정치학교를 개근으로 수강했습니다.) 계기와 정치학교의 매력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공부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소개받았습니다. 정치학교를 통해 지금의 사회가 돌아가는 상황을 진보적 관점에서 접할 수 있고 진보정치의 이론과 이념적 접근이 가능했습니다.
당원끼리 모이기 쉽지 않아서 정치적 관점 고립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당원들도 계신걸로 아는데 당원끼리 모여서 교류의 장을 연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또다른플랜에서 만난 당원들은 진보정치에 열의가 강하신 분들이라 각자의 자리에서 개인이 가진 고민을 나눌 수 있고 당의 가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 안의 당원분들 개개인의 이념 사상 중점가치 관점을 확인할 기회였다고 하네요. 이상미 당원 본인의 식견과 관점을 넓혀서 구체적으로 정리해볼 기점으로 삼기가 좋았다고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7월 18일부터 2기 정치학교가 열리는데 듣고 싶어지시죠?

이상미 당원과 인터뷰를 하면서 당원들의 역사와 열정을 빛나게 하기 위해서 정의당은 무엇을 혁신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상미 당원은 또다른플랜과 함께 여성의 노동을 가치화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정책을 만들고, 투쟁을 하고, 제도를 구축하는 것까지 이상미 당원과 함께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다른플랜에서 이상미 당원을 만나보고 싶지 않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