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표재선
올해는 1996년 노동자 대투쟁 30주년이다. 96-97년 총파업은 경제투쟁을 넘어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나아갔다. 국민승리21을 거쳐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희비애환이 있었고, 갈등과 분열이 있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진보정치는 위기이고, 민중들의 삶은 위태로운 것이 현실이다. 현실은 어둡고 어렵지만, 역사를 통해서 위기를 극복할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노동법과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
1996년 12월 26일 새벽, 대한민국 헌정사상 유례없는 사건이 발생한다. 집권 여당인 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몰래 국회로 들어가 안건을 기습 상정해 단 7분 만에 노동법과 안기부법 개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킨 것이다.
노동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1)정리해고제 도입 2)변형근로제 확대 3)파업 대비 대체근로제 4)제3자 개입 금지(산별노조 불인정) 5)노조 정치활동 금지였다.
이 새벽 날치기 통과는 노동자들의 분노를 일깨웠고,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노동법 개악저지 투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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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1997 총파업 당시 명동성당에 집결한 노동자들, 출처 : 한국일보 |
날치기 통과 직후, 당시 법외단체였던 민주노총은 즉각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는 1945년 해방 이후 최초의 전국적·조직적 총파업이었다.
명동성당을 거점으로 파업의 불길이 번졌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 대규모 사업장이 멈춰 섰고, 시민들은 파업 노동자들에게 간식을 전달하며 응원을 보냈다. 초기 제조업 중심의 파업은 이내 사무직, 전문직(보건의료, 언론 등)으로 확산되었으며, 한국노총 소속 단위 노조들까지 가세하며 명실상부한 전국적 총파업으로 발전했다.
당시 총파업 지지 여론이 80%에 달하고, 국제노동기구(ILO) 등에 의한 국제적 압력이 가중되자 결국 김영삼 정부는 여야 영수회담을 통해 법안 재심의를 약속했다. 1997년 3월, '정리해고제 2년 유예' 등을 골자로 한 수정안이 통과되며 파업은 일단락되었다.
투쟁의 역사적 의미
이 투쟁은 노동조합의 총파업이 경제적 투쟁을 넘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정치 투쟁이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세 가지 성과를 남겼다.
첫째, 노동자의 시민권 확보이다. 투쟁을 통해서 노동조합이 사회 정책의 당당한 주체임을 입증했다.
둘째, 민주주의 수호이다. 불법적, 권위주의적 입법 절차에 제동을 걸었고, 시민사회의 연대를 이끌어내어 승리를 만들었다.
셋째, 민주노총의 합법화 발판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투쟁을 통해 민주노총은 사실상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며 이후 합법적 지위를 얻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투쟁의 막바지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입법권이라는 국회의 벽에 부딪혔다. 거리에서의 승리가 국회에서의 법안 재개정 과정에서 온전히 관철되지 못하는 것을 목격하며, 기존 보수 정당 체제 내에서는 노동자의 권리를 근본적으로 보호할 수 없다는 비판적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러한 비판적 인식은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나아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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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나무위키 |
국민승리21과 민주노동당
총파업 직후 노동계 내부에서는 "투쟁은 노동자가 하고, 생색은 야당이 낸다"는 회의론과 함께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대변할 독자 정당 건설이 시급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권영길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을 후보로 세운 '국민승리21'이 결성된다. 비록 대선 득표율은 1.2%에 그쳤으나, 한국 사회에서 노동계급에 기반한 진보정당운동의 가능성을 확인한 실험대였고 첫 발걸음이었다.
그리고 2000년 1월 30일, 총파업의 성과를 계승하고자 했던 노동계, 진보적 사회운동 세력, 지식인 그룹, 시민사회 진영이 함께 하는 민주노동당이 창당하였다. 노동자, 농민, 빈민, 서민이라는 계급적 토대 위에 진보적 지식인과 학계가 결합한 대한민국 최초의 대중적 진보정당의 탄생이었다.
자본주의 극복과 민주주의 확장을 통한 저항세력의 정치세력화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은 신자유주의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각계각층의 연대로 개악을 저지시키며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확장시켰다.
총파업을 주도했던 노동계급은 진정한 민주주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서는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는 인식으로 나아갔고 정치세력화에 성공했다.
자본주의 극복과 민주주의 확장을 통한 저항세력의 정치세력화라는 진보정당의 본성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정당이 바로 민주노동당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민주노동당은 창당 2년 뒤 지방선거에서 22명의 당선자를 냈고, 2004년 총선에서는 비례대표 득표율 13.03%를 얻으며 10명(지역2, 비례8)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30년전의 역사는 정의당이 대안 진보정치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진보정당운동을 복원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현실은 이전과 다를지 몰라도 본성과 전략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진보정당운동이 복원되지 않으면 고통받는 것은 민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지금이 바로 진보정당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