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배성준
1차 세계대전 직후 1918년 대의원대회에서 ‘생산, 분배, 유통, 수단 공동소유, 산업, 서비스의 통제’를 과제라 지적하였는데. 이는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의미하며 당헌 4조로 채택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당헌 4조를 중심으로 선거공약을 준비한 노동당은 393석의 의석을 확보하면서 단독 내각을 구성하였고, 클레멘트 애틀리 당대표가 총리로 취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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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레멘트 애틀리 영국의 제43대 총리 , 출처 : 위키피디아 > |
단독 내각을 구성한 애틀리 내각이 집권하면서 중앙은행, 탄광, 가스, 전력 등 주요 사업을 국유화했다. 또한 베버리지 보고서를 바탕으로 국민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를 시행한다. 국가가 국민에게 무상의료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NHS는 전 세계 국민의료 서비스의 시초로 영국의 자랑이 된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냉전체제 시작, 한국전쟁 등으로 국방예산이 늘어나면서 애틀리 내각은 복지예산을 삭감했다. 또한 생산수단의 국유화 정책도 진행하지 못하게 된다. 더불어 노동조합의 파업을 탄압하고 임금 동결 등의 반노동 정책을 시행하는 등 노동당의 우경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결과로 1951년 선거에서 보수당이 정권을 잡게 된다.
노동당의 우경화 시도는 1955년 휴 게이츠 컬치기 당대표가 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는데 ‘현대 사회주의란 전후에 구축된 혼합경제의 범위 안에서 소득재분배를 계속 추진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신수정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더불어 당헌 4조 폐기를 시도하였으나 노동조합 진영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1964년 당대표가 된 해럴드 월슨은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정권 교체를 이루었고, 금융자본을 제압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실행하지 않았고 임금인상 투쟁을 억제하는 노동법 개정을 시도 하여 노동조합의 불만을 낳았다. 결국 노동당은 1970년 총선에서 패배해 야당이 된다.
패배 이후 노동당은 1973년 10월 전당대회를 통해서 사회주의 사상에 입각한 <1973년 강령>을 채택하고 1974년 선거에서 주요 대기업 국유화 정책을 내놓으면서 총선에서 승리하게 된다. 총선에서 승리한 월슨 내각은 토니 벤을 산업부 장관에 임명한다.
산업부 장관이 된 토니 벤은 국가 기간 산업을 국유화하지 못하면 경제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토니 벤의 주장은 다른 각료들을 불편하게 했고, 보수언론은 토니 벤을 비난했다.
결국, 토니 벤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던 월슨 내각 각료들은 보수언론의 비판을 묵인하면서 토니 벤을 해임한다. 토니 벤의 해임에 실망한 당원들은 대안경제 전략관 같은 토니 벤의 정책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벤을 중심으로 모이면서 벤 좌파가 탄생하게 된다.
1976년 국제 외환시장에서 영국 파운드화 투매가 발생하고 달러 대비 파운드 가치가 떨어졌다. 영국은 외환위기가 왔으며, 국제통화기금(IMF)에 국제금융을 받으면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첨병인 IMF는 긴축재정 기조를 요구했고, 결국 조건을 받아들인 영국은 40억 파운드 구제금융을 받았다.
영국의 경제 위기가 오면서 1979년 ‘신보수주의’를 앞세운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에게 정권을 내어준다. 이후 노동당은 계속 야당의 위치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고 영국은 신자유주의 광풍에 휩싸이게 된다.
1994년 7월 당대표 선거에서 토니 블레어가 당선되었다. 토니 블레어는 ‘신노동당’ 슬로건으로 당선되었고, 1995년 4월 당헌 4조에서 국유화 조항을 삭제한다. 노동당의 우경화가 심각해진 것이다.
1995년 5월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10월 당대회에 블레어 지도부가 진행한 정책 재 검토안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면 승인되었다. 10년간 토니 블레어 내각은 신자유주의를 지지한 내각이었고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가 발생하면서 책임을 져야 했으며, 다음 해 총선에서 패배했다. 토니 블레어는 10년 동안 노동당이 만들어 놓았던 정책들을 차근차근 망가뜨리기 시작하였고, 결국 영국을 신자유주의 자본에 넘겨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당은 2015년 5월 총선에서도 역시 패배를 한다. 이후 당내 급진좌파의원 모임인 ‘사회주의 캠페인 그룹’소속 제레미 코빈이 당대표 후보로 출마한다. 제레미 코빈은 토니 벤이 제안했던 대안경제 전략과 같은 정책을 내놓았다. 사유화된 철도의 국유화, 공공 투자은행을 통한 경제 활성화, 대학까지 무상교육, 주택 임대료 통제 등 청년층의 문제에 중심을 두고 시대 변화에 맞추어 정책을 내놓았다. 이 정책은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면 제레미 코빈은 당대표에 당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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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러미 코빈, 출처 : 위키피디아 > |
하지만 내부 주류 의원단은 당의 변화를 막기 위해서 당 대표 코빈과 충돌하였다. 2019년 브렉시트를 반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EU 탈퇴 국민투표 실시를 지지하다가 2019년 총선에서 60석의 의석을 잃으면서 책임론에 따라 대표에서 물러났다.
노동자의 정치 진출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노동당은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한 이상사회를 향한 꿈이라는 진보정당의 본성을 잃어버렸고 우경화되었다. 영국 노동당의 위기는 우경화와 맥을 같이 한다. 그리고 노동당이 다시 정권을 잡거나 성장하는 경우는 우경화에서 벗어나 당헌 4조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할 때였다.
벤좌파를 계승한 제레미 코빈의 개혁 정책들은 당내 보수 세력에 의해서 무산되었고 제레미 코빈은 결국 노동당을 떠났다. 하지만 제레미 코빈이 제안해 현재 영국에서 급부상 중인 '모두의 당'을 보면 벤 좌파가 주장했던 혁신 정책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삶이 힘겨운 영국 시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정책이었다는 것을 확인 시켜준다.